Chiplet 시대의 설계 전략

최근 반도체 산업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Chiplet(칩렛)’이라고 불리우는 기술입니다. 칩렛은 하나의 거대한 반도체 기능을 여러 개의 작은 모듈로 나누어 설계하고, 이를 패키지 수준에서 통합하여 만드는 기술입니다. 이 개념은 칩의 성능, 생산성, 비용 효율성 등을 동시에 끌어 올릴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무 엔지니어가 바라 본 칩렛 기반 설계 전략과 그 현실적 과제 및 성공적인 접근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왜 칩렛인가? 한계에 부딪힌 단일 다이 설계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단일 다이(Monolithic Die)에 모든 기능을 담는 방식이었습니다. 모든 기능이 단일 다이에서 해결 되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정 미세화의 한계, 수율 저하, 개발 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다른 방법을 생각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칩렛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각각의 기능별로 모듈화된 칩을 조합하여 조립하면서 아래와 같은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공정 최적화 – 로직, 메모리, 아날로그 블록을 각각 최적 공정으로 제작 가능
  2. 비용 절감 – 작은 다이는 생산 단계에서 수율이 높아져 총 비용이 감소
  3. 개발 효율성 향상 – 이미 검증된 칩렛 IP를 재활용해 개발 기간 단축

이러한 장점 덕분에 AMD, Intel, TSMC, 삼성전자 등 유수의 반도체 기업들이 앞 다투어 칩렛 기반 플랫폼을 내놓고 있습니다.

칩렛 설계의 핵심. 인터커넥트와 시스템 아키텍처

칩렛 설계의 가장 큰 기술적 이슈는 칩 간 연결(Interconnect)입니다. 각 칩렛이 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초저지연, 고대역폭의 인터페이스를 필요로 합니다.

이를 위해 업계에서는 아래와 같은 기술 표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 UCIe (Universal Chiplet Interconnect Express) : 주요 기업이 참여한 개방형 칩렛 인터커넥트 표준
  • BoW (Bunch of Wires) : 저전력, 단거리 통신을 위한 간단한 연결 방식
  • HBI (High Bandwidth Interconnect) : AI 가속기 등 고대역폭이 필요한 응용을 위한 고성능 링크

시스템 아키텍처 관점에서는 칩렛 간 메모리 일관성, 전력 관리, 타이밍 동기화가 중요한 설계 포인트입니다. 각 모듈은 독립적으로 동작하면서도 전체 시스템이 하나의 SoC처럼 동작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검증과 테스트. 칩렛 설계의 숨은 난관

칩렛 구조를 사용하면 설계 과정도 어려울 뿐 아니라 검증(Verification)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해집니다. 칩렛 간 인터페이스, 전력 분배, 신호 무결성(SI/PI) 등의 문제들을 모두 고려해서 검증을 하여야 하며, 기존에 사용하던 SoC 검증 환경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아래와 같은 접근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 칩렛 단위 시뮬레이션 + 시스템 통합 검증의 이중 구조
  • 에뮬레이터(Emulator)를 활용한 패키지 수준의 타이밍 검증
  • DFT(Design for Test) 전략의 조기 설계 반영

검증 단계에서 칩렛 간 통신 프로토콜을 모델링하여 설계 초기에 문제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지름길입니다.

물리적 통합. 패키지 기술의 중요성

칩렛 설계의 성공 여부는 패키징 기술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의 패키징 기술은 그냥 다 만들어진 다이를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포장지로서의 위치였지만, 칩렛 설계에서의 패키징은 서로 다른 공정, 크기, 열 특성을 가진 여러개의 다이들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야 하는 고도의 2.5D/3D 적층 기술이 필요해졌습니다.

칩렛 설계를 하고 있는 각 반도체사의 대표적인 기술은 아래와 같습니다.

  • TSMC CoWoS (Chip-on-Wafer-on-Substrate)
  • Intel Foveros 3D 패키징
  • Samsung I-Cube / X-Cube

이 기술들은 실리콘 인터포저나 TSV(Through Silicon Via)를 이용해 칩렛을 고밀도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열, 신호 간섭, 제조비용 증가 등 현실적인 제약이 아직은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설계 단계에서부터 패키지 제약 조건을 반영해야 합니다.

칩렛 시대에 필요한 설계 마인드

칩렛 설계는 단순하게 하나의 회로를 여러 다이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모듈화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엔지니어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1. 시스템 수준의 사고(System Thinking) – 개별 블록이 아닌 전체 아키텍처 관점에서 최적화
  2. 인터커넥트 및 패키지 이해도 – 전통적인 RTL 설계만으로는 한계 존재
  3. 다학제적 협업 능력 – 설계, 패키징, 검증, 공정팀 간의 긴밀한 협업 필수

결국 칩렛 시대의 모든 엔지니어는 “모듈 간의 조율자”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모듈화가 반도체 혁신을 이끈다

칩렛은 잠깐 스쳐 가는 트렌드가 아닙니다. 반도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패러다임 시프트 입니다. 이제는 하나의 다이를 잘 만들어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닌 모듈 간의 유기적인 조합과 최적화가 성능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향후 칩렛 생태계가 성숙하는 시기가 오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도 자신들만의 칩렛을 설계하여 오픈 생태계(Open Ecosystem) 안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반도체 설계의 미래는 거대한 단일 칩이 아니라, 작지만 똑똑한 모듈 간의 협력으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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